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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mestimes

0. 맛집 블로거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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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집 블로거의 고백,

맛집을 추천하는 일은 어렵다. 자신만만하게 사람들을 데려가고서도 상대가 고개를 갸우뚱 거릴까 첫 입이 끝나기까지 가슴 졸인다. 블로거라는 명분 아래, 하나의 조각 케이크에 온갖 미사여구를 붙이고 셜록마냥 토핑부터 시트, 크림까지 해집어놓는 일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그 기준이 대중없는 대중이였다는 점은 좀 힘들었다. 내 입에는 느끼하고 거친 버터크림 케이크가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취향저격일 수도 있다는 걱정을 했다. 내 입맛은 꽤나 정확한 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을 너무나 사랑하는 점을 두려워했다.

게다가 내가 사교성 넘치는 스타일도 아니라는 것도 꽤나 큰 골칫거리엿다. 글은 답답스러운 내 성격을 그대로 빼박아 나오기 일 수 였다. 그래서 항상 이모티콘이나 의성어를 언제 얼마나 써야하는지 고민하면서도, 너무 호들갑스럽진 않은지 또한 수십번 살폈다. 그래서 블로그는 나에게 하나의 부담거리가 되었고, 새로 취직한 회사를 핑계삼아 나는 블로그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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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새로운 회사를 만난지도 1년.

시간은 너무나 빨랐다. 나는 아직도 매일 혼나는 2년차 신입이었다. 그 짧고고 긴 시간, 무얼하며 살았던건지 기억을 되짚으면 되짚을 수록 나는 흔들렸다. 평생 함께하고싶었던 업계에 대한 열정은 찰나로 소각된것 같았고, 남은 건 손바닥 위에 남겨진 잿더미 한 줌처럼 희미하고 불완전해 보였다. 열심히 살지 않았던게 아닌데, 열심히 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 나에게 오랜만에 들린 블로그는 꽤나 자극적인 공간이었다. 모든 먹거리를 함께했던 엑스와의 기록들은 꽤나 씁쓸했고 고스란히 남아있는 어린 날의 나는 낯간지러우면서도 어여뻤다. 내가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시간이 여기 있었다. 기록이 가진 힘이 이런 거였을까.

그래서 나는 맛집블로거를 그만하기로 했다.
언젠가는 꼭 다시 살려보리라 잡고있던 미련을 끊었다.

대신 그냥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적어도 이 공간은 나로 채워져야한다는 생각이 강렬했다.
맛집 블로그 코

그래서 나는 다시 글을 적기 시작했다. 좀 더 솔직하게.
나를 잘 토닥토닥 다듬고 덮어, 시린 바람이 부는 날은 이 곳에서 온기를 찾을 수 있도록.
조금씩 더 괜찮은 날을 채울 수 있도록.

나만을 위한 벙커 같은 공간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며.

흔들리는 어느 날,
서울 도심의 한복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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